이 산성은 조선 숙종 원년(1675)에 7년의 세월과 7개 군민을 동원하여 쌓았다. 이곳에 산성을 쌓은 것은 전주에서 가까운 험한 지형을 골라 유사시 전주 경기전의 태조 영정과 조경묘의 시조 위패를 봉안하기 위한 것이다. 갑오동학혁명시에 전주부성이 동학군에 의해서 함락되자 태조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이곳에 피난시킨 일이 있다. 이 성의 당초의 규모는 폭 3m, 높이 4~5m, 길이 16㎞이며, 3개소의 성문과 8개의 암문이 축조되었다. 성안에는 4, 5개의 우물과 9개의 못을 팠었고, 진을 두어 지켰다. 지금은 일부 성벽과 동·서·북 3개문 중 전주로 통하는 서문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데, 이 역시 문 위에 있었던 3칸의 문루는 붕괴되어 없어지고 높이 3m, 폭 3m의 아치형 석문만이 현존한다.